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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경인칼럼]한국 정치는 '멀티 페르소나'를 모른다

국민들은 다양한 정치서비스 요구하는데
여야가 제공하는건 늘 획일적이고 단편적
총선용 '쇼케이스' 일회용일뿐 변화 없어
공약도 강요 다름없고 제3의 대안도 없다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어김없이 올해의 소비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는 열 개의 키워드를 지난해 늦은 가을 내놓았다. 벌써 12년째 지속되고 있는 이 작업을 스스로는 '소비트렌드'라고 한정하지만 한국사회의 기저를 손으로 짚어보고, 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함으로써 가장 가까운 미래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2020년을 관통할 것이라는 10대 키워드 중에서도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는 단연 으뜸이고 중심이다. 본디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라틴어인데 현대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이 가져다 썼다. 개인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취하게 되고 이것을 통해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본래의 자아와는 또 다른 자아로서 외적으로 보이게 되길 원하는 자기 모습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멀티 페르소나'는 다중 자아, 복합 자아, 모듈형 자아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할 때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고급스러운 취향과 안목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을 과시하고, '트위터'에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개진한다. '페이스북'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정보를 나눌 때 쓰고, 가족과 연인과의 사적 대화는 '카카오톡'을 이용한다. 이렇게 단수의 개인은 복수의 SNS에서 저마다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지닌 복수의 자아로 나타난다. 중국 3대 전통극 중 하나인 쓰촨성 천극(川劇)의 '변검'과 닮았다. 배우가 복합분장기법으로 극의 분위기에 따라 등장인물의 감정변화와 고유한 개성을 마치 가면을 바꿔 쓰듯 순식간에 얼굴에 바꿔 나타내는 것처럼 오늘의 소비자는 저마다 놓인 상황과 맥락에 따라 매 순간 변하고 그런 변화를 당연시하며 즐긴다.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상황에 맞게 꺼내 쓴다"는 융의 정리는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절묘하다.

'멀티 페르소나'는 나머지 9개 키워드와도 치밀하게 상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키워드들이 작동하는 토대를 이루고 공간을 확보하며 확장의 출발점이 된다. 이런 지평이 마련된 것은 순전히 온라인 공간의 확대 덕분이다. 선으로 묶여있던 온라인 공간이 모바일로 확장되고 다양한 기능과 특성을 가진 플랫폼들이 잇따라 출현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식, 5G에 기반한 초개인화기술에 힘입어 이러한 확대와 확장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모든 개인을 상황별로 구체화함으로써, 다시 말해 개개인의 '멀티 페르소나'를 파악 또는 확보함으로써 각 개인이 놓여있는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고 이에 꼭 알맞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일반화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변화가 이렇게 혁명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둔감한 영역이 딱 한 군데 남아있다. 다름 아닌 정치다. 낡고 관습적이며 구태라고 질타받는 행정 분야조차도 인공지능을 도입하네, 빅데이터를 활용하네 부산한데 정치 쪽은 영 딴 나라 얘기다. 바람은 이미 눈썹을 날리는데 말이다. 천 개의 페르소나를 가진 한국의 정치서비스 고객들은 저마다 놓여있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종다색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기대하고 있지만 정치가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그것은 늘 그렇듯 획일적이고 단편적이다. 요즘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벌이는 '쇼케이스'는 누구 말대로 '추잉껌'이고 '일회용'일 뿐 본질과 변화의 반영이 아니다. 사실상 양당제인 정치구도에서 정당들이 제시하는 공약도 말이 선택이지 강요와 다를 바 없다. 중간지대도 없고, 제3의 대안도 없다. 받아들이거나 포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멀티 페르소나'를 위한 정치서비스는 없다. 김난도 교수팀이 자신들의 작업을 굳이 '소비트렌드'라고 일찌감치 한정한 것도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는 한국 정치를 아예 논외로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던가 싶다. 정치서비스 또한 소비재임에도 불구하고.

/이충환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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