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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거리와 사이의 역설

인간이란 존재 거리와 틈이란 이중성 지녀
사랑을 '인격의 결합' 정의한 헤겔 주장처럼
남녀간 밀당 아닌 '인격체' 유지거리 필연적
가족 의존 극복못하면 모성회귀적 퇴행 발현

거리가 요긴할 때도 있다. 북한화가 황영준 전시회장에서 그의 조선화를 보면서 거리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선묘와 점묘법을 이용한 황영준의 채색 수채화는 조금 물러나서 보아야 진가가 드러난다. '능라도 소나무 습작' 같은 작품은 가까이 다가서면 붓질의 흔적 때문에 소나무의 자태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구부정한 소나무의 등걸과 늘어진 가지, 푸른 솔잎들이 실물처럼 생동한다. 그가 만년에 그린 대작 '백두산 천지'를 비롯한 금강산의 폭포 그림들도 물러나 보면 그 생동감은 물론 물빛에 서린 서광과 신비감까지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물리적 공간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가 더 중요하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작가의 작품세계나 주제의식을 놓치기 쉽다. 개별 작품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한 작가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에서 물러나 그가 추구했던 예술의식과 방법론이 무엇이며 시대나 사회적 맥락에서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예술작품의 미적 가치를 제대로 향수하기 위한 마음의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히 미적 거리(aesthetic distance)라고도 한다. 미적 거리란 시간적·공간적 거리가 아니라 내면적 거리이다. 미적 거리는 미적 관조의 대상과 대상의 미적 호소로부터 감상자 자신을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을 말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는 중요하다. 나의 한 지인은 '인간(人間)'이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는 동양적 인간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강조하는 관점을 주목하라고 일러주었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로 이루어진 사람의 손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도구를 잘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손바닥과 다섯 손가락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이다. '사이'를 함께 주목하는 이같은 생각은 개체의 존재와 개체와 개체 사이의 무(無)가 공존하는 관계, 존재와 무의 통일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방식이다. 불교에서 세상을 특별히 '세간(世間)'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람들 간의 사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개인과 개인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강조하는 것은 개체로서의 자아가 다른 자아와 숙명적으로 관계 맺는 존재, 즉 복수적 자아일 수밖에 없는 본질을 말하는 것이며, 역으로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불가피함도 동시에 설명하는 것일 터이다.

일상적으로는 거리와 틈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만 머리빗이나 그물의 틈을 보면 정반대이다. 머리빗은 빗살과 빗살 사이의 틈을 이용하려 흐트러진 머리를 가지런히 가다듬는 기능을 한다. 물고기를 잡는 그물의 기능도 그물의 빈 구멍, 즉 그물코에 달려 있다. 작은 물고기를 잡겠다면 그물코가 작은 그물을 준비해야 한다. 큰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코가 커야 한다. 꽃게잡이 그물이나 잉어 잡는 그물은 그물코가 커야 한다. 새우잡이 그물이나 실뱀장어 그물은 모기장만큼 촘촘하다. 그런데 그물코가 너무 촘촘하면 그물질을 하기 어렵다. 물이 잘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접근이나 몰입에서 벗어나 심미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대상을 부정하는 무관심이나 냉소적 거리가 아니라 대상을 관조하기 위한 비평적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인간관계의 거리도 존재론적인 필연이며 가장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니 '인간(人間)'이란 존재는 거리와 틈의 이중성이라는 외줄을 타야 하는 줄타기 곡예사와 닮았다. 사랑을 자유의지를 지닌 인격의 결합이라고 정의한 헤겔의 주장처럼 남녀 간의 사랑에서조차 구애 전략상의 '밀당'이 아닌 '인격체' 사이에 유지해야 할 '거리'는 필연적이다. 또 인간관계에서 의존성을 친밀감과 구별해야 한다. 가족에 대한 유아기의 과도한 의존이 극복되지 않으면 모성회귀적 퇴행이나 누이콤플렉스의 형태로 발현할 수도 있듯이.

/김창수 인하대 겸임교수·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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